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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주위를 앉아 번 게 않았을 몫까지[잠시만요]■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5년 9월 28일 (일요일)
■ 진행 : 김영민 아나운서
■ 대담 : 가수 이세온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김영민 아나운서 (이하 김영민) : 세상은 넓고 재능 있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모신 이분만큼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은 드물 것 같아요. 오늘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시간에는 해드림대출 정치권에서 일하다가 기자, 가수 또 MC로까지 활동하면서 다양한 매력 보여주고 계신 분 모셨습니다. 말을 잘하기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노래를 더 잘하는 가수 이세온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가수 이세온 (이하 이세온)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세온입니다.
◆ 김영민 : 청취자분들께 직접 자기소개 간이사업자대출 를 해 주실까요?
◇ 이세온 : 이 세상의 온도를 높이고 싶은 가수이고요. 따뜻하고 사람이 주목받는, 각광받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노래하고 있는 가수입니다.
◆ 김영민 :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래하고 있다는 이야기해 주셨어요. 언제부터 가수로 활동을 하시게 되신 건지 그 부분 궁금하거든요.
대구은행 직무 ◇ 이세온 : 원래 꿈은 원래는 가수였는데요. 그런데 살다 보니까 놓쳤어요. 가수로 일찍부터 시작할 기회를 놓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국회에 있다가 나와서 늦게 시작했어요.
◆ 김영민 : 그러셨구나. 그러면 지금은 어떤 노래로 활동을 하고 계신 거예요?
◇ 이세온 : '훌랄라'라는 곡으로 활동하고 있어 심즈 프리플레이 직장 요.
◆ 김영민 : 제목만 들어도 신나는데요? 어떤 곡인지 소개 좀 해주세요.
◇ 이세온 : 뜻하지 않게 헤어지게 된 연인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윤중로에서 벚꽃 경을 갔다가 약속하지 않았는데 딱 맞닥뜨린 거죠. 그래서 너무 반갑고 다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그런 내용을 담은 노래입니다.
◆ 김 nh햇살론 영민 : 그렇군요. 그런 상황이 되면 저라도 훌랄라 할 것 같아요. 앞서서 제가 이세온님으로 소개를 시켜드렸는데, 본명이 아니신 거죠?
◇ 이세온 : 그렇죠. 이지영이 본명입니다.
◆ 김영민 : 어떤 뜻이 담겼는지 왜 이런 이름을 짓게 되셨는지 궁금하더라고요.
◇ 이세온 : 해석과 한문 해석이 있는데요. 한글 해석은 '세상의 온도를 높이는 자'라는 뜻이고요. 한문 해석은 별 새, 기둥 온자 그러니까 '별 중에 기둥이 되라' 이런 뜻인데, 제 사주에 맞게 작명가가 만들어 주셨어요.
◆ 김영민 : 이제는 본명보다 예명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시기도 하나요?
◇ 이세온 : 좀 더 예쁜 것 같아요.
◆ 김영민 : 특별하고 특이한 이름이기도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살아오신 길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볼까 해요. 지금은 가수로 여기에 계시지만 가수가 되기 전에는 굉장히 특이한 이력이 있으세요. 국회의원실에서 일하셨다고요? 어떤 계기로요?
◇ 이세온 : 사실은 제가 정치권에 입문한 지 꽤 오래됐어요. 98년도, 99년도 그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만둔 지는 꽤 됐고, 그 이후로 정말로 제 꿈인 가수가 되기 위해서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여러 가요제에도 나가보고 엄청 많이 도전을 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죠.
◆ 김영민 :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몸담고 있는 것에서 나오는 게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거잖아요.
◇ 이세온 : 죄송한데 노래하고 싶다고 그냥 나왔거든요.
◆ 김영민 : 진짜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 이세온 : 정말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 김영민 : 알고 보면 그전부터 역사가 되게 특이하시더라고요. 대학 시절에 총학생회 부회장을 하셨어요. 약간 세상을 바꾸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학시절부터 혹시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 이세온 : 원래 그랬던 건 아니고요. 원래 아버지가 음악광이셔가지고 음악을 원래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예술적이고 글 쓰는 거 좋아하고 이런 아이였다가 인도로 6개월 동안 자원봉사를 가게 됐어요. 그런데 거기서 너무 부조리한 이 사회와 맞닥뜨린거죠.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살 수 있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저랑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만나게 됐어요. 마침 그 친구들이 소위 옛날 말하는 사회 참여적인 아이들. 그래서 그 친구들이랑 같이 총학생회를 만들어서 같이 학교생활을 하게 됐고요. 그 이후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국회로 가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 김영민 : 그렇군요. 그러면 이 세상의 부조리나 사회를 더 나아지게 하고 싶다는 그런 성향과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음악도 좋아하는 예술적인 성향이 같이 있으셨던 거군요. 그게 다 삶에 녹아나는 것 같습니다. 가수의 길을 걸으실 때 고민은 없으셨어요?
◇ 이세온 : 정확히 정책비서 생활을 했었었고요. 고민이 제가 없었던 이유가 그 당시에 제가 마지막 선거를 2006년 5.31 동시 지방선거에 졌죠. 그 당시 선거가 제가 11번째 참여한 선거였어요. 당내선거 무슨 바깥에 총선, 지방선거 또 재선거까지 포함해서 그런데 하다 보니까 한 50%의 확률을 갖고 있더라고요. 반 정도는 이겼고 반 정도는 졌는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이런 삶이었나', '내가 뭘 위해 달리고 있지' 이런 생각을 깊게 하게 되면서 어차피 한 번 살면 끝납니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거를 못 해 보면 더 늙었을 때 후회가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별 고민 없이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거 그냥 할래 이렇게 된 거죠.
◆ 김영민 : 그렇군요. 저라면 고민도 엄청 많이 해보고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이루고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용기가 너무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세온 : 그런데 죄송함은 있었어요. 그 당시에 저희 보좌관님이 저한테 한 달의 시간을 주시더라고요. 더 고민해 봐라. 네가 나이도 있고 가수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쉽게 되겠냐, 고생길이 훤한데. 많이 말리셨어요. 거의 한 90% 정도의 선배들이 많이 말리셨고 선배들이 봤을 때 이 아이는 정치 일을 할 아이였기 때문에 가수는 아니라고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 김영민 : 오랜 꿈이었던 가수로 드디어 데뷔를 하셨습니다. 데뷔곡을 처음 녹음하셨을 때 기억이 나세요?
◇ 이세온 : 기억나죠. 데뷔곡이라기보다는 사실 저희 쪽에서는 독립군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기획사랑 매칭이 잘 안 됐어요. 그래서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서 일종의 홍보 활동을 잘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 속에 들어갔어야 되는데 매칭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움직이게 된 거죠. 알음알음으로 해서 곡을 받고 녹음을 마쳤는데 그 곡에 대해서 홍보 활동에 대한 계획이나 그런 플래닝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글쎄요. 설렌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뿌듯함 이런 게 가슴 깊이 오더라고요. 그때 막 울었던 것 같아요. 진짜 너무너무 감격을 해가지고. '내가 정말 원하는 걸 내가 했구나' 이런 성취감과 감격 이런 게 막 중첩돼서 울었던 기억이 나요.
◆ 김영민 : 최근에 제 지인의 메신저 배경 사진에 있던 글귀가 갑자기 생각이 나요. '오랫동안 꿈을 꾸는 사람은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되게 유명한 글귀잖아요. 친구가 그걸 딱 해놨던데 갑자기 세온님이랑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 꿈을 닮아간 모습이 그려지면서 갑자기 그 글귀가 딱 생각이 나네요. 근데 또 코로나 시기 때는...
◇ 이세온 : 정말 힘들었죠. 무대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정말로.
◆ 김영민 : 아니 어떻게 또 이렇게 하실 수가 있지? 기자와 MC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셨던 거예요?
◇ 이세온 : 사실 MC는 가수 활동을 하다 보면 하게 돼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가성비를 추구하기 때문에 가수이자 MC를 또 많이 원하기 때문에 계속 해 왔었던 것이고 코로나가 와서 정말 막막했어요.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무대가 하나도 없고 당장 먹고 살아야 되는데 막막하잖아요. 그래서 대안을 찾기 시작했죠. 그런데 마침 잡지사를 참관하는 분들과 같이 인연이 돼서 잡지사 이사로 결합을 했다가 처음에는 섭외 쪽의 일을 담당을 했다가 같이 어느 순간에 이 글을 쓰게 됐죠. 인터뷰를 하면서.
◆ 김영민 : 글도 잘 쓰셨을 것 같아요.
◇ 이세온 :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글 쓰는 게 재미있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그 순간만큼은 깊이 연구하고 제가 그 사람의 삶이 되어서 깊이 한번 느껴보는 그런 것들이잖아요. 창작적인 또 고통을 가지면서 정말로, 뭐라고 할까요? 깊은 이해. 사람에 대한 정말 깊은 이해, 근본적인 이해들 이런 걸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 김영민 : 네, 맞습니다. 글도 쓰시고 말도 하시고 또 세상을 노래하기도 하시고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가고 계십니다. 기자로 활동할 때는 주로 어떤 분들을 만나셨어요?
◇ 이세온 : 정말 많이 했죠. 우리 남진 대선배님부터 해서 김동근 아나운서님, 그다음에 대개 사회 인사들 중에 정말 선한 영향력, 따뜻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 위주로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 이 잡지사의 취지였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인터뷰를 많이 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에는 김현준 신부님이라고 계셔요. 마가렛과 마리안느 간호사로 여러분 알고 계실 텐데 소록도에서 헌신하신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분들이 계셔요. 그분들과 같이 활동했던 김현준 신부님이 계시는데 그분과 인터뷰하면서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나',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이런 정말 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 방향성에 대한 고민들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 김영민 : YTN 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오늘은 정말 다재다능한 매력을 갖고 계신 가수 이세온 씨를 모시고 함께하고 있습니다. 라이브를 안 들어볼 수가 없겠죠. 원래 저희가 항상 그냥 음원을 틀어 드리는데, 오늘은 특별히 라이브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세온 : 음원으로 노래해 본 적은 없어요. 너무너무 죄송한 게 제가 공항에서 바로 오느라고 잠을 못 잤어요.
◆ 김영민 : 제가 리허설 때 들어봤잖아요. 완벽하세요. 개인의 기준이 높다 보니까 그런 거예
요. 여러분 조금만 양해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노래인가요?
◇ 이세온 : 사실은 요즘 공연 때 많이 부르는 노래인데요. 처음에는 되게 락을 좋아해서 신나는 거를 되게 즐겨 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잔잔하고 아름답고 섬세한 그런 곡들을 또 추구하게 되더라고요. 마침 또 2주 후에 또 어떤 분께서 좋은 소식으로 즐거워 하셔서 그 분에 대한 축가의 개념일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요.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 특히,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준비해 봤습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첫사랑' 한번 청해 듣도록 하겠습니다. 밖에서 난리 났어요. 감사합니다. 목 상태 안 좋다고 너무 거짓말을, 목 상태가 좋을 때는 도대체 무대를 펼치시는 겁니까? 딱 그 단어가 생각이 나요. '간드러진다'
◇ 이세온 : 네, 그런 노래예요.
◆ 김영민 : 너무 가사도 몽글몽글하고 노래가 너무 좋네요. 앞으로 많은 청취자분들의 사랑을 받을 것 같습니다. 노래를 듣고 나니까 더 궁금해져요. 국회의원실에서 일하실 때도 분명히 이 끼가 있으셨을 거란 말이죠. 어떻게 숨기셨어요? 아니면 어떻게 간접적으로 표출을 하셨나요?
◇ 이세온 : 다행히 뒤풀이가 있기 때문에, 저희는 다행히 뒤풀이가 좀 셉니다 저희는.
◆ 김영민 : 뒷풀이 때 항상 마이크를 놓지 않으시는 편이셨군요. 정치 쪽에도 계셨었고 기자 일도 하셨고 MC도 가수와 함께 또 겸업하시면서 직업이 엄청 여러 개시잖아요. 여러 개 셨고. 제일 적성에 맞는 일은 거예요?
◇ 이세온 : 저는 가수가 제일 좋아요. 정말로 목 상태가 안 좋아서 너무 아쉽기는 한데 뭐라 할까요? 그러니까 굳이 막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런 걸 하지 않아도 '아' 한소절에서 끝나버리는. 너무 위대한 것 같아요.
◆ 김영민 : 가수 분들은 세상에 정말 많잖아요. 그 수많은 가수와 수많은 음악 중에 이세온씨, 그리고 이세온씨의 음악만이 가지는 강점, 경쟁력이 있다면요?
◇ 이세온 : 저는 아마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포용력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이런 것과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수 생활 저도 벌써 꽤 됐더라고요. 오랜 가수 생활을 하는 분이 낼 수 있는 그런 어떻게 표현할까요? 삶의 깊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것들이 묻어나고 있는 것 같아서 이런 부분들이 저만이 가진 강점이고 그리고 또 음악과 같이 제가 토크쇼나 이런 것들을 같이 겸해서 하는데 곁다리로 같이 또 말로써 풀 수 있는 부분들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서 그분에 대한 감동이나 깊이나 이런 이해를 시킬 수 있는 그런 부분들, 그런 게 아마 저만 할 수 있는 강점이 아닌가 싶어요.
◆ 김영민 : 토크쇼 얘기하셨는데 MC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일까요?
◇ 이세온 : 정말 많죠. 정말 많은데 제가 MC로만 이렇게 행사를 진행한 게 꽤 많아요. 천번이 넘어가는 것 같아요. 국회 포럼부터 해서 무슨 UN 행사 여러 가지 많이 했는데 행사가 있었냐면 시나리오가 안 넘어와요. 다음 순서가 뭔지가 안 나와. 마이크는 들고 있는데.
◆ 김영민 : 그럴 때 MC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건데.
◇ 이세온 : 마이크 들고 있는데 다음 순서가 안 넘어오죠. 한 2시간 진행해 봤죠. 정말 힘들었어요.
◆ 김영민 : 그렇게 힘들고 당혹스러웠던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기도 하죠.
◇ 이세온 : 맞아요. 정말 당혹스러웠어요. 되게 큰 행사였는데 주최 측에서도 너무 많이 준비하다 보니까 이쪽에 에너지가 달렸던 거예요. 그래서 그게 당황스러웠고 또 두 번째 기억에 남는 행사는 특히 국회 포럼 같은 걸 할 때는 제가 약간 이렇게 총학생회를 하다 보니까 약간 이렇게 분위기를 교합시키는 묘한 그런 게 있어요. 그래서 특히 사업 설명회, 비전 선포식 이럴 때 너무 좋아하고 제 곡 훌랄라를 선거 때 캠페인곡으로 썼어요. 너무 감사드리는데 어쨌든 그런 분위기를 되게 잘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 김영민 : 모든 경험들이 MC 할 때도 다 녹아나거든요. 음악과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온 씨의 개인적인 얘기도 해보죠. 고향이 전남 강진이세요?
◇ 이세온 : 그러죠? 강진이죠잉.
◆ 김영민 : 우와 구수한 느낌이 확 납니다. 고향에서 열리는 무대에 설 때는 서보 많이 서셨죠?
◇ 이세온 : 강진은 강진청자축제가 원래 대한민국 2대 축제 중에 하나였는데요. 굉장히 큰 축제예요. 그래서 메인급 행사인데 너무 편안해요. 제가 뭘 해도 삑사리가 나면 안 되겠지만 설사 그런다 손 치더라도 다 이해가 될 것 같은 그런 편안함이 있어요.
◆ 김영민 : 집에서 노래 부르는 느낌이시겠어요. 부모님 앞에서 박수 받으면서 노래 부르는 그런 느낌이 드실 것 같은데,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셨다는 얘기를 앞서 해 주셨잖아요. 더 자세하게 얘기해 주실까요?
◇ 이세온 : 저희 아빠가 제가 정말 존경하는데, 아빠가 되게 아까운 분이세요. 사실은 전남 도지사이신 김영록 지사님하고 광주일고 짝꿍이셨어요. 같은 반 짝꿍이셨는데 되게 아까운 분인데 본인은 면장으로 마지막 마감을 하시고 지금은 바리스타를 따셔 가지고 강진에서 다와 카페에서 엄마랑 두 분이서 요일제 순환 근무를 하시면서 노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커피를 팔고 계시는데 아빠가 나름 굉장히 학구적인 분이신데 동생들이 많다 보니까 본인이 원하는 삶에 대해서 많이 도전을 못하시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달래시느라고 음악을 가까이하시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고등학생 때부터 모아오신 LP가 한 6천 장 정도가 집에 있어요. 되게 희귀판이 많아요. 막 조미미 1집 이런 거 있잖아요.
◆ 김영민 : 일단 집이 되게 넓으실 것 같아요.
◇ 이세온 : 시골집에 다 옮겨놨어요. 다 옮겨놨는데 희귀판도 되게 많고, 저희는 되게 곤욕스러웠던 게 어릴 때는 일요일마다 자꾸 아빠가 되게 음악에 민감하시니까 무슨 관인데 이게 한 천만 원짜리 관 이런 거를 일본에서 사 오셔요. 그래 가지고 되게 소리에 민감하세요. 본인 나름대로는 되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시고 싶어서 그렇게 막 억지로 깨워요. 새벽 6시부터 깨워가지고 무슨 베토벤 틀어주시고 여러 가지 음악 들려주셨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왜 이러지 자야 되는데 막 그랬는데.
◆ 김영민 : 그때부터 세온 씨를 가수로 키우기 위해서 조기 교육을 하셨던 게 아닌가.
◇ 이세온 : 의외로 또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고요. 제가 큰딸이잖아요. 그러니까 큰딸에 대한 기대치 때문에 뭔가 안정적으로 살길 바라신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웬 뜬금없이 가수야, 그래가지고 너무 불안해하셨죠.
◆ 김영민 : 안 그래도 다음 질문이 이거예요. 부모님은 세온 씨가 가수가 되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고요.
◇ 이세온 : 그렇죠. 그래서 제가 고민을 한 끝에 어떻게 했냐 하면 우리 부모님 그리고 또 제가 너무 사랑하는 우리 고모, 정말 저를 아껴주시는 부모님 같은 또 사회적 관계 지인들 한 30명 정도를 모셔서 두 번째 콘서트를 인연이라는 제목으로 해서 열었어요. 그래서 아무리 설득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서 내가 정말 이걸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설득을 하자 노래로. 그렇게 해서 우리 부모님과 우리 고모와 지인들 또 인생에서 정말 큰 영향력을 주신 우리 그런 분들 우리도 오셔서 얘기를 했어요. 노래도 불러드리고 그때는 지금보다 못했지만 그래도 노래를 하면서 제가 노래를 왜 하고 싶은지 단순히 가수가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이 세상 사회를 만드는 일환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 있는 노래로, 음악으로 기여를 하고 싶어서 그렇다는 것을 설득을 했죠. 인연 콘서트를 마치고 난 이후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 주시기 시작했어요.
◆ 김영민 : 그렇군요. 지금의 가장 1호팬은요?
◇ 이세온 : 1호팬은 진짜 아빠죠. 사실은 아버지가 가장 노심초사합니다.
◆ 김영민 : 그렇습니다. 그런 든든한 존재들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꿈을 향해 나아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관심사도 많으시고 보고 계신 세상도 굉장히 넓으신 것 같은데, 요즘 새롭게 관심을 두고 계신 관심사 있으세요?
◇ 이세온 : 요즘에는 사실 예술적인 부분도 있고 사회적인 다른 측면도 있는데 제가 작년에요 가요 뮤지컬에 출연했었어요. 이미숙 선배님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라는 히트곡이 있는데, 그 곡을 극화한 뮤지컬인데요. 거기에 제가 옥자로 출연을 했었는데 원래는 대학 때 마당극 극단에 살짝 있긴 있었어요. 그런데 연기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를 했었는데 그 뮤지컬을 기점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회가 있나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는 중이고요. 또 사회적으로는 선배들이 자꾸 저한테 일을 같이 하자고 그래요. 그래서 무슨 사단법인 뭘 만들자 뭘 하자 이래가지고 자꾸 행정적인 일을 같이 하자고 그러셔가지고.
◆ 김영민 : 같이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이것도 하고 이것도 하시고.
◇ 이세온 : 몇 가지 또 협회에 관련된 또 일을 하고 있어요.
◆ 김영민 : 진짜 대단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나 하기도 힘든 일을 어떻게 그렇게 여러 개를 부지런히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이것뿐만이 아니라 봉사활동 같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에도 관심이 많으시다고요?
◇ 이세온 : 그렇죠. 원래는 사실은 봉사활동이 제 삶이 목적이에요. 제가 잠깐 말씀드렸지만 6개월 동안 인도로 자원봉사를 가게 되면서 그때 저는 제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설정을 했어요. 나는 이런 삶을 살아야 되겠다. 그래서 나중에 정말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제3세계를 가든지 아니면 국내에 있더라도 그렇게 봉사하면서 그런 공동체 안에서 봉사하면서 생을 마감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꾸준히 그런 기회를 찾고 있고요. 놀이도 마찬가지고 다른 사회 활동도 마찬가지고 봉사하고 나눌 수 있는 일은 무조건 저는 하고 싶어요.
◆ 김영민 : 궁극적으로는 남을 위해서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사는 삶을 원하시는 것 같아요. 이어지는 질문이자 마지막 질문인데 앞으로 한 10년 뒤에 최종적인 꿈이나 목표 그리는 삶이 있으신가요?
◇ 이세온 : 저는 음악을 선택하면서 사실은 정치 쪽에 있었을 때 선배들이 많이 제의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양한 기회가 있었는데 그 모든 제의를 뿌리치고 오게 된 건 사람에 대한 화두였거든요. 이 사람이라는 화두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방식으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음악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가져갈 건데 제가 10년 후에 제 모습은 아마 사람에 대한 화두로 음악 활동을 하는데 일단 이렇게 해보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을 다 활용해서 그분에 대한 일종의 콘서트를 하는데 그 사람과의 토크쇼를 하면서 그러니까 대단히 높은 위치에 있고 대단히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각광받아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의 삶이 어느 곳 하나, 어느 분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삶이 없고 귀하지 않은 삶이 없거든요. 그런 분들의 삶을 다 조명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그분과 인터뷰하면서 그분에 대한 이야기 저의 18번이 아니라 그분의 18번을 제가 불러드리거나 그분이 부르게 해드리고 싶고요. 나중에는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내고 싶어요. 물론 있겠지만 그래서 그렇게 해서 또 제가 바라보는 관점으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그 이해와 따뜻함과 그 사람이 추구하고자 했던 그런 여러 가지 꿈에 대한 이야기들,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깊이 있게 나눠보는 그런 것들을 하면서 아 시대에 사람이 이런 거를 추구하면서 이렇게 살다 갔어요- 이런 자료들을 많이 남겨놓고 싶어요.
◆ 김영민 : 궁극적으로 세상의 온기를 주고 싶으시다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죠. 오늘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세상에 온기를 주는 가수 이세온 씨와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 이세온 : 감사합니다. 너무 영광이었어요.
◆ 김영민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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